시조강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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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02.png 시조강생사(始祖降生史)

 

단기 3226년(서기 893년) 신라(新羅) 진성왕(眞聖王) 7년 계축(癸丑) 8월 15일에 파주(坡州) 용연(龍淵) 중부(中浮) 유석함(遊石凾)에서 강생(降生)하셨다는 전설(傳說)이 있음.

 

m01.png 시조강생(始祖降生)에 대(對)한 사적고찰(史的考察)

문온공(文溫公) 휘(諱) 혜교(惠敎)께서 찬(撰)하신 태사공묘표세주(太師公墓表細註)에 의(依)하면 파평(坡平) 용연리(龍淵里)에 있는 연중(淵中)에서 윤온(尹媼)이 득석함(得石凾)하였다는 설(說)과 공(公)의 좌우협하(左右脇下)에 유81린(有八十一鱗)하고 양견(兩肩)에 적지(赤痣)하되 여일월상(如日月像)하며 족유칠흑자(足有七黑子)라 하는 등등(等等)의 설(說)은 모두 언전(諺傳)에 불과(不過)하며 사섭탄괴(事渉誕恠)라 불가재록(不可載錄)이라 하였고 명재선생(明齋先生)은 태사공(太師公)의 적거동경(謫居東京)이라 함을 의심(疑心)하였으나 사기(史紀)에 혜종(惠宗)이 즉위 후(卽位後) 공(公)의 상모비범(相貌非凡)함을 시기(猜忌)하고 출수동경(黜守東京)이라 한 구절(句節)과 여사(麗史)에 혜종(惠宗)이 다시기(多猜忌)하다는 점(点) 등(等)을 종합(綜合)하여 최사근거고(最似近據故)로 고록우차(姑錄于此)라 하셨다.

 

또 언전(諺傳)에 왈(曰) 용연(龍淵)에서 석함출현(石凾出顯)이 당 소종(唐昭宗) 경복(慶福) 2년 계축(癸丑) 8월 15일이라 하였고 종인사록(宗人私錄)에는송 태조(宋太祖) 개보(開寶) 6년 계유(癸酉)에 81세로 졸우임소(卒于任所)라 하였다.

 

또 씨족통보(氏族統譜)에 의(依)하면 동료(同僚)가 공(公)의 선대(先代)를 물은 즉 궤사답왈(詭辭答曰) 아무선대(我無先代)요 화생어파평산중(化生於坡平山中)이라 하셨으므로 그 이상(以上)을 더 밝힐 필요(必要)가 무(無)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一般)이 용연(龍淵)은 윤씨(尹氏)의 시조발상지(始祖發祥地)로 칭(稱)하게 되었고 유적(遺蹟)으로 수호(守護)하게 되었던 것이며 따라서 시조강생(始祖降生) 1067년(一千六十七年) 기해(己亥) 봄(春)에 전선(全鮮)의 동종(同宗)윤씨(尹氏)는 대회(大會)를 열고 총의(總意)로써 다시 준설(浚渫)을 함에 이르렀다.

 

 

m02.png 시조강생사(始祖降生史)

 

단기 3226년(서기 893년) 신라(新羅) 진성왕(眞聖王) 7년 계축(癸丑) 8월 15일에 파주(坡州) 용연(龍淵) 중부(中浮) 유석함(遊石凾)에서 강생(降生)하셨다는 전설(傳說)이 있음.

 

m01.png 시조강생(始祖降生)에 대(對)한 사적고찰(史的考察)

문온공(文溫公) 휘(諱) 혜교(惠敎)께서 찬(撰)하신 태사공묘표세주(太師公墓表細註)에 의(依)하면 파평(坡平) 용연리(龍淵里)에 있는 연중(淵中)에서 윤온(尹媼)이 득석함(得石凾)하였다는 설(說)과 공(公)의 좌우협하(左右脇下)에 유81린(有八十一鱗)하고 양견(兩肩)에 적지(赤痣)하되 여일월상(如日月像)하며 족유칠흑자(足有七黑子)라 하는 등등(等等)의 설(說)은 모두 언전(諺傳)에 불과(不過)하며 사섭탄괴(事渉誕恠)라 불가재록(不可載錄)이라 하였고 명재선생(明齋先生)은 태사공(太師公)의 적거동경(謫居東京)이라 함을 의심(疑心)하였으나 사기(史紀)에 혜종(惠宗)이 즉위 후(卽位後) 공(公)의 상모비범(相貌非凡)함을 시기(猜忌)하고 출수동경(黜守東京)이라 한 구절(句節)과 여사(麗史)에 혜종(惠宗)이 다시기(多猜忌)하다는 점(点) 등(等)을 종합(綜合)하여 최사근거고(最似近據故)로 고록우차(姑錄于此)라 하셨다.

 

또 언전(諺傳)에 왈(曰) 용연(龍淵)에서 석함출현(石凾出顯)이 당 소종(唐昭宗) 경복(慶福) 2년 계축(癸丑) 8월 15일이라 하였고 종인사록(宗人私錄)에는송 태조(宋太祖) 개보(開寶) 6년 계유(癸酉)에 81세로 졸우임소(卒于任所)라 하였다.

 

또 씨족통보(氏族統譜)에 의(依)하면 동료(同僚)가 공(公)의 선대(先代)를 물은 즉 궤사답왈(詭辭答曰) 아무선대(我無先代)요 화생어파평산중(化生於坡平山中)이라 하셨으므로 그 이상(以上)을 더 밝힐 필요(必要)가 무(無)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一般)이 용연(龍淵)은 윤씨(尹氏)의 시조발상지(始祖發祥地)로 칭(稱)하게 되었고 유적(遺蹟)으로 수호(守護)하게 되었던 것이며 따라서 시조강생(始祖降生) 1067년(一千六十七年) 기해(己亥) 봄(春)에 전선(全鮮)의 동종(同宗)윤씨(尹氏)는 대회(大會)를 열고 총의(總意)로써 다시 준설(浚渫)을 함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