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적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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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대(馳馬臺)

상서대(尙書臺)

분수재(分數災)

봉강재(鳳岡齋)

용연(龍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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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대(尙書臺)

파평산 동쪽 파주군 천연면 웅담리에 소재하는 상서대는 문숙공께서 수양정(修養事)으로 쓰시 던유서 깊은 유허지이다.

 

문숙공께서 여진 정벌을 하시고 개선하셔서 별저(別邸)로 쓰시던 곳이며 장내에는 친히 심으신 괴목 몇 그루가 있었다 하며 상서대 옆에는 못이 있어 공께서 독서와 낚시를 즐기며 심신을 휴양하시던 곳이기도 하다.

 

문숙공께서 여진 정벌을 마치고 개선할 때 웅단(焦丹)이란 여진 여성이 따라와서 정성껏 시중을 들다가 문숙공께서 1111년 별세하신 후 못 옆 바위에 올라가 통곡하고 투신하여 순사한 사실이 있어 이곳을 그후 웅담(能澤)이라 명명하고 마을 이름도 웅담리라고 하였으며 그 바위를 낙화암(落花岩)이라고 하였다.

 

문숙공 후손들은 이 응단 할머니의 혼백을 위로하기 위하여 1960년 바위 위에 낙화암이란 비석을 세우고 매년 추원단 단제를 모시고 난 뒤 웅단 할머니에게도 제사를 올리고 있다. 파주군지에 보면 응담리에 둘레가 11척, 높이가 30여척이나 되는 괴목 두 그루가 있는데 이 괴목은 상서대 장내의 정목(亭木)이니 고려 왕조의 공신이신 윤문숙공이 심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두 나무는 임진왜란때 병화로 죽었던 것인데 그 중 한 그루가 소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도 밝히고 있다. 

 

고종때 연천에 사는 박경선(朴慶善)이란 사람이 논에 물길을 내려고 괴목 한 그루를 벌목하려 하였다. 우리 종중에서 막았기 때문에 그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감정을 품은 박경선은 윤씨 문중을 모해 하고자 윤가들이 역모를 꾀하여 허설 제천祭天 : 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지낸다)하고 있다고 당국에 밀고 하였다. 그 당시 영의정이던 김좌근(金左根)이 포도대장 김병국(金病國)을 시켜 조사해보니 문숙공의 제단으로 드러났다. 영의정 김좌근은 박경선을 무고죄로 혹산도로 귀양보냈다. 박경선의 아들 박원중(朴元中)은 그 후 원한을 품고 상서대를 붕괴시키려고 단 아래에 또다시 수로를 개설하러하자 파주군내 유림들이 상소를 올렸다.

 

영의정 김좌근은 박원중올 함경북도 경원으로 귀양보냈다.

상서대 경내에는 추원단(追遠壇)이 있다. 이 단은 헌종 4년(1838)에 영평군 행직(餘平君 行直)이 지풍(之豊)종인과 상의하여 상서대 경내에 소규모의 단을 만들어 문강공 언이(文康公 參頭)로부터 충간공(忠簡公) 숭순(承順)까지 산소를 실전하였거나 휴전선 이북에 있어 묘사를 올리지 못하는 선조를 제사 지내도록 하고 추원단이라 이름하였다. 추원단 제향은 매년 음력 10월 2일에 거행되었으나 태사공 묘소 추향일과 문숙공 묘소 추향일이 변경된 관계로 1979년부터는 음력 3월 10일로 제향일을 변경하였다.

 

추원단에 비위(碑位)를 모신 9위의 선조는 다음과 같다.

1.  6세 문강공 언이  (文康公 參頭)

2.  7세 시 랑공 돈신 (待郞公 淳信)

3.  8세 유수공 상계  (留守公 商季)

4.  9세 녹사공 복원  (錄事公 復元)

5. 10세 어사공 순     (御史公 純)

6. 11세 문현공 보     (文顯公 施)

7. 12세 양간공 안숙  (良簡公 安被)

8. 13세 영평군 척     (餘平君 涉)

9. 14세 충간공 승순  (忠簡公 承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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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대

(馳馬臺)

상서대

(尙書臺)

분수재

(分數災)

봉강재

(鳳岡齋)

용연

(龍消)

 

pu002.jpg

상서대(尙書臺)

 

파평산 동쪽 파주군 천연면 웅담리에 소재하는 상서대는 문숙공께서 수양정(修養事)으로 쓰시 던유서 깊은 유허지이다.

 

문숙공께서 여진 정벌을 하시고 개선하셔서 별저(別邸)로 쓰시던 곳이며 장내에는 친히 심으신 괴목 몇 그루가 있었다 하며 상서대 옆에는 못이 있어 공께서 독서와 낚시를 즐기며 심신을 휴양하시던 곳이기도 하다.

 

문숙공께서 여진 정벌을 마치고 개선할 때 웅단(焦丹)이란 여진 여성이 따라와서 정성껏 시중을 들다가 문숙공께서 1111년 별세하신 후 못 옆 바위에 올라가 통곡하고 투신하여 순사한 사실이 있어 이곳을 그후 웅담(能澤)이라 명명하고 마을 이름도 웅담리라고 하였으며 그 바위를 낙화암(落花岩)이라고 하였다.

 

문숙공 후손들은 이 응단 할머니의 혼백을 위로하기 위하여 1960년 바위 위에 낙화암이란 비석을 세우고 매년 추원단 단제를 모시고 난 뒤 웅단 할머니에게도 제사를 올리고 있다. 파주군지에 보면 응담리에 둘레가 11척, 높이가 30여척이나 되는 괴목 두 그루가 있는데 이 괴목은 상서대 장내의 정목(亭木)이니 고려 왕조의 공신이신 윤문숙공이 심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두 나무는 임진왜란때 병화로 죽었던 것인데 그 중 한 그루가 소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도 밝히고 있다. 

 

고종때 연천에 사는 박경선(朴慶善)이란 사람이 논에 물길을 내려고 괴목 한 그루를 벌목하려 하였다. 우리 종중에서 막았기 때문에 그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감정을 품은 박경선은 윤씨 문중을 모해 하고자 윤가들이 역모를 꾀하여 허설 제천祭天 : 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지낸다)하고 있다고 당국에 밀고 하였다. 그 당시 영의정이던 김좌근(金左根)이 포도대장 김병국(金病國)을 시켜 조사해보니 문숙공의 제단으로 드러났다. 영의정 김좌근은 박경선을 무고죄로 혹산도로 귀양보냈다. 박경선의 아들 박원중(朴元中)은 그 후 원한을 품고 상서대를 붕괴시키려고 단 아래에 또다시 수로를 개설하러하자 파주군내 유림들이 상소를 올렸다.

 

영의정 김좌근은 박원중올 함경북도 경원으로 귀양보냈다.

상서대 경내에는 추원단(追遠壇)이 있다. 이 단은 헌종 4년(1838)에 영평군 행직(餘平君 行直)이 지풍(之豊)종인과 상의하여 상서대 경내에 소규모의 단을 만들어 문강공 언이(文康公 參頭)로부터 충간공(忠簡公) 숭순(承順)까지 산소를 실전하였거나 휴전선 이북에 있어 묘사를 올리지 못하는 선조를 제사 지내도록 하고 추원단이라 이름하였다. 추원단 제향은 매년 음력 10월 2일에 거행되었으나 태사공 묘소 추향일과 문숙공 묘소 추향일이 변경된 관계로 1979년부터는 음력 3월 10일로 제향일을 변경하였다.

 

추원단에 비위(碑位)를 모신 9위의 선조는 다음과 같다.

1.  6세 문강공 언이  (文康公 參頭)

2.  7세 시 랑공 돈신 (待郞公 淳信)

3.  8세 유수공 상계  (留守公 商季)

4.  9세 녹사공 복원  (錄事公 復元)

5. 10세 어사공 순     (御史公 純)

6. 11세 문현공 보     (文顯公 施)

7. 12세 양간공 안숙  (良簡公 安被)

8. 13세 영평군 척     (餘平君 涉)

9. 14세 충간공 승순  (忠簡公 承順)